전도서는 잠언과 함께 솔로몬이 쓴 2개의 지혜서이다. 욥기를 포함해 구약에는 3개의 지혜서가 있다. 이 3개 지혜서의 공통점은 ‘하나님’이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인생 밑바닥을 경험한 욥과 인생 최상 최고를 경험한 솔로몬이 ‘하나님’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욥과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했을 뿐만 아니라 부족과 국가를 경영했다는 점에서 지도자와 통치자들에게 주는 교훈도 커다. 특별히 한반도를 향한 전도서의 교훈은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한 메시지로 와 닿는다. 한반도는 2020년부터 새로운 선택의 기로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서는 1장 2절과 12장 8절에서 모든 것의 헛되고 헛됨을 강조한다. 하지만 솔로몬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의 덧없음과 헛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12장 13절에 직접 결론은 이것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임을 강조한다.
여기 기록한 하나님-엘로힘-은 복수로 구약성경에서 2,000번 가까이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단수로 사용된 하나님은 50번 정도 사용된다. 이 말은 구약성경은 복수 엘로힘을 단수보다 강조한다는 말이다. 모든 인생, 모든 민족과 국가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하신다는 말이다.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말로 굳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솔로몬은 인간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아무리 탐구해도 그것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 한반도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주변에서 앗시리아-바벨론-페르시아-헬라-로마란 강대국이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 것처럼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개신교는 이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는 있는 것일까? 성경을 통한 논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성경을 통해 논쟁한다는 것은 교리적인 싸움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욥이나 솔로몬도 결국 자신은 누구이며 하나님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을 통해 지혜서의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신앙과 지도자의 숨겨진 모든 것을 드러내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몇 년간 한반도를 이끌어 가실 모습을 기대해 본다.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