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읽고

시편의 문을 여는 시편 1편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복있는 사람은…'(Blessed is the one …)

시편의 문을 닫는 시편 150편 6절은 이렇게 마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Let everything that has breath praise the Lord)

시편은 모든 인생들이 던지는 질문인 ‘복’에 대해 과연 어떤 삶이 복된 삶인지를 압축된 시어로 표현한다. 가장 복된 삶은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때로 이해할 수 없고 받아 들일 수 없어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하고,  저주도 쏟아내지만 결국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가장 복되고 고귀한 삶임을 고백한다. 

시편을 다 읽고나면 한 사람이 머리속에 남는다.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이래로 많은 고난의 여정을 살았던 사람이다. 어릴 때는 목동으로 하나님이 만든 대자연 속에서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우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추구한다. 죽을 때 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유언을 남길 정도다. 다윗의 시편을 읽으면 ‘욥기’가 생각난다.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할지언정 그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윗도 자신의 극한 환경속에서 원수를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성경에서 다윗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 왕조의 짧은 역사와 연관이 있다. 사무엘이 사사시대의 마지막으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이후 다윗, 솔로몬 왕조가 이어지지만 곧 북쪽 여로보암과 남쪽 르호보암 왕으로 분열시대를 맞는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게,  남 유다는 BC 586년 경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1600년에 걸친 긴 디아스포라의 수면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단일 왕국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왕은 ‘다윗’이다. 사울, 솔로몬은 말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다윗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돼 있다.

이로보건대 한국개신교는 다윗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윗은 윤리적인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인물이다. 밧세바와의 동침, 우리야에 대한 살인, 여러 아내를 거느린 점 등등 …

이미 대한민국과 한반도는 역사적인 큰 변동의 전환기에 진입했다. 지금은 교리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정통, 보수를 따질 때도 아니다. 우리의 1.5세와 2세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 줄 것이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우리앞에 놓여 있다. 

다윗이 기도했던 나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라였다. 인간의 제도나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한반도에 도래하게 될 것이다.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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