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읽고

사도행전을 읽으면 어떤 사람이 예수를 만난 이후에 전개되는 장엄한 인생의 대서사시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고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에는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살아 생전 직접 예수님을 만난 일이 없지만 당대와 후세 사람들은 그가 ‘사도 바울’이라 불리워 지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태어난 곳은 지금의 터키 남부 길리기아 다소였고 어릴 때 유대 예루살렘으로 이사와 철저한 유대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의 학풍은 가말리엘 학파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회심 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온갖 핍박을 받았는데 40명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일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했다는 사실을 바울의 조카가 전달해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부 가족과 함께 지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합니다. 그것은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서 말하는 바 구원자, 메시야의 도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구약에 정통한 사람이었으므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심 이전의 사울은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신성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 자신이 온 인생을 걸고 추구하던 그 메시야, 구원자가 바로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임을 알게되자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가 알았던 모세와 선지자의 모든 글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됩니다. 만 2년동안 사도 바울은 죄수이지만 로마에서 황제에게 항소한 사람으로서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면서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했다고 사도행전 28장은 기록합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복음 전하는 이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성령행전’이란 별칭도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가는 여정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방향을 바꾸게 됨으로 유럽에 복음의 문이 열리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지금도 역사하실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은 어떤 무아지경이나 도를 닦다가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지금의 구약성경에서 그 해답을 길어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만 2년동안 셋집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며칠동안, 그의 평생을 통해 전달됐던 메시지는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통한 메시야의 도래, 그 분이 바로 예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성령을 강조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성령운동들이 있었습니다. 성령운동을 통해 많은 치유와 이적들이 발생할 수도 있겠으나 그 근원은 모세와 선지자의 글이라는 사실을 바울의 교훈을 통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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