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을 읽고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시작합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될 것과 아브람을 통해 열방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1996년 11월 하나님의 부름으로 워싱턴 디시에 갔을 때 제가 아브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으로 깨달아질 때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복음의 여정은 짧은 시간이 아닌 장구한 세월과 몇 세대를 지나기도 하고 수천년을 걸쳐 흘러 가는 것 같습니다.

마태도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마태는 유대교에서 말하는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4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분량이 많은 마태복음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밀을 비유로 계속 이야기합니다.

처음 족보에서 다섯명의 여인을 언급합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
이 중 다말, 라합, 밧세바 같은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여자들입니다.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해서 아이를 낳은 다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다윗이 빼앗은 우리야의 아내. 이런 인물들에 대해 성경은 인간의 본능을 애써 감추려거나 덮지 않습니다.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태의 기록중에 돋보이는 부분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사건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부터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 발생하는 일들을 기록합니다. 52절, 53절은 부활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가 예수의 죽음은 곧 부활과 동시 사건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는 그 순간은 곧 죽음과 동시에 부활이 발생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을 앞에서 말한 워싱턴 디시에 갔을 때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의 인생을 던지게 될 때 그것은 외부적인 죽음이지만 내부적인 부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전 인생의 방향을 판가름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받아들이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많은 부분을 하나님의 왕국의 어떠함을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세계 이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왕국은 겉으로 보기에 대부분 참여자들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다른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자삼고 세례주는 일들은 그 과정을 통과한 자들에 의해 지속됩니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한참 이후에야 기록됐다는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하나님을 만난 사건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쉽게 정리될 수 없는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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