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를 읽고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하던 B.C. 722년을 전후로 활동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음란한 고멜을 사랑했던 선지자의 모습입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고멜을 사랑한 것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고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1장부터는 음란한 여인과 자녀를 출산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첫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 두번째 딸은 로루하마, 세번째 아들은 로암미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예언의 말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호세아 선지자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몸으로 보여주는 선지자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호세아의 행동을 자신의 자유로운 성생활의 변명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호세아처럼 음란한 여인을 사랑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거짓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호세아같은 선지자가 무수하게 나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행동은 단순한 방탕이라고 말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시 호세아는 주변 사람들이나 친척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눈총을 받았을까요. 경건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난데없이 음란하기로 이름 난 여인과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3명이나 낳았으니 충격이 컸을 것입니다.

뉴욕에서도 스스로를 골보수라고 자칭하던 한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숱한 염분을 뿌렸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항상 유명인들의 주변에는 고멜의 망령이 떠도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온 세상이 돈으로 물들어 가는 시대에 엄습해 오는 무력감과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해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세아는 당시 앗시리아 제국의 실상을 보고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제국의 현실을 보고 한국의 실상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많은 줄 압니다. 하지만 많은 목회자나 교회 관계자들은 호세아처럼 현실과 곧 닥쳐올 하나님의 심판에 주목하기보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 강조하고 하나님의 마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만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지서를 펼치고 이사야부터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1517, 마틴 루터가 당시 타락한 천주교를 향해 말씀으로 돌아 갈 것을 강조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말씀을 펼치고 다시 읽는 일입니다. 교리의 안경을 걷어내고 다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내리막길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입니다.

2017,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에만 눈이 멀어 장사치들처럼 열을 올려서는 안됩니다.

이 얘기를 하는 제가 열 받을 것 같아서 그만 쓰겠습니다.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