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읽고

성경은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와 닿는다. 아마도 읽는 사람의 마음상태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가나안’이 먼저 떠오른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사실 가나안을 향해 먼저 떠난 사람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였다.
아브람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아브람, 나홀, 하란.
하란은 고향에서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는다.
데라는 갈대아 땅 우르를 떠나 하란에 도착했을 때 가나안으로 더 진행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자신보다 먼저 죽은 아들 하란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가나안을 향한다.
그리고 열방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이 된다.
이삭도 야곱도 가나안은 최후에 묻혀야 할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의 이스라엘도 가나안을 고집한다.
수천년 전의 조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으로 받은 땅임을 주장한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중동 분쟁의 불씨는 아브라함의 약속과 근원적으로 연결돼 있다.

요셉이 꿈때문에 이집트로 팔려가고 야곱과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주하지만 가나안을 향한 열망은 이집트 탈출로 다시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했다고 본다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가나안에 재도전한 것이다.
모세는 이 하나님의 약속성취를 ‘모세오경’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아브라함의 가나안행과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은 개인과 국가차원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창세기는 한 개인의 신앙과 순종이 어떻게 민족과 국가차원으로까지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점에서 서구 기독교문명의 근본정신은 ‘도전정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는 현실속에서 실천하는 그 자체가 바로 삶에 대한 ‘도전정신’이 아닐까?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