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를 읽고

요엘서는 흔히 사도행전에 비교됩니다. 왜냐하면 요엘서 2장 28절 말씀에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엘서 전체를 읽어보면 요엘 선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한 자에게는 기쁨의 날로 자기 자신을 신뢰한 자에게는 심판의 날로 다가 옵니다.

물론 모든 인간에게는 100%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기쁨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삶을 살다보면 구름 사이로 보이는 햇빛처럼 얼핏 설핏 그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요엘서 2장 28절이나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약속한 성령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날마다 임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것은 삶의 해석과 관계됩니다. 누구나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의 삶을 살게됩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던 흙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던 숨을 거두는 날까지 이런 저런 삶을 살게됩니다. 그 삶을 비관적으로도, 희망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해석을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나의 교리와 견해와 입장을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온 인류의 운명과 관계된 것으로 성경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두가지 생각이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를 따를 것인가 나를 따를 것인가? 여호와를 따를 것인가 국가를 따를 것인가? 이 두가지는 대립할 때도 있고 조화를 이룰 때도 있습니다. 마치 개인의 영성이 자신과 조화를 이룰 때가 있고 내면에서 대립하고 분열될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이 두가지가 대립할 때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이 두가지가 가장 치열하게 대립되는 곳입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조만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