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를 읽고

에스라는 학사 겸 제사장으로 나옵니다. 페르시아 왕과 관리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모세 율법의 전문가였고 이를 직접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 마지막 부분에 그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모세 율법의 충실한 이행자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다민족 사회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당시 상황은 모세 율법을 준수하는 길만이 포로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이 신앙공동체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1차 바벨론 포로귀환은 예루살렘 성전이 폭망한 뒤 50년 후인 BC 536년 경에 이루어집니다. 에스라 첫 부분에 스룹바벨 등 지도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허락하에 약 5만여 명의 귀환자 명단이 나옵니다. 2차 바벨론 포로귀환은 약 80년 쯤 후인 BC 458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3차 바벨론 포로귀환은 그로부터 약 14년 뒤인 BC 444년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여인들과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에스라가 처음에는 이 사실을 잘 모르다가 이것을 안 이후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이 리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혼한 여인들과 그 여인들로부터 낳은 자식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돌려 보내는 결정을 내립니다. 3개월의 철저한 조사끝에 이방여인과 결혼한 유대인의 명단을 공개합니다.

어느 집단이나 국가든 생존을 유지하기위해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에스라가 이방여인들과의 결혼 소식을 듣고 처참한 상황에서 기도했을 때 주위에 생각있는 유대인이 모여 해결방법이 나오고 국가적인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에스라서에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예루살렘과 페르시아 왕실의 관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허락한 것은 페르시아 고레스 왕이었고 이후 다리우스 왕, 아닥사스다 왕도 적극적인 지원자로 나옵니다. 페르시아 왕실이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전액 국가재정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했을까요?

아닙니다. 에스라서에는 자신의 왕실과 그 이후 후손들의 안녕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지원했다고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때 가져왔던 금, 은, 기명들도 모두 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은 제국의 흐름과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제국은 어디일까요? ‘미국’입니다.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하에 있는 나라들은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그러한 순간에 봉착해 있습니다. 제국의 목적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통치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무차별한 징계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정치 지도자라고 합니다.

에스라는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풀어헤치고 모든 음식을 끊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모습이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지도자 한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