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를 읽고

스바냐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B.C. 722년) 당한 후, 한 100년 쯤 지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하바국 선지자랑 비슷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스바냐를 읽으면 인상적인 점이 처음 논조가 심판과 회개로 계속 이어가다가 3장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우상숭배와 율법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반드시 치룰 것이라고 언급하지만 포로들을 돌이키는 그날에 온 열방들 가운데서 너희로 하여금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복음송 가사로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항상 이중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이 있지만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심판과 형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과 형벌은 영적인 차원보다는 현실적인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에 있어 그 심판자는 앗시리아와 바벨론으로 등장합니다.

그 전쟁을 영적인 해석을 좋아하는 우리는 인간 내면의 구원문제로 해석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은 최근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든 전쟁을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을 쉬고 있는 ‘정전상태’입니다.

대한민국이 항상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당신이 결국 마지막에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포로귀환과 평화의 회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한민국은 큰 전쟁을 치르고 잿더미가 된지 70년이 다 돼 갑니다. 이제 곧 하나님은 통일과 평화를 주시기 원합니다. 스바냐 3장에 표현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냐? 인간의 노력도 필요한가? 와 같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는 이런 논쟁은 이제 그만큼 했으면 충분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