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New Testament) > 초대교회사 (Acts)] | 작성일: 2026-02-08 02:04 | 조회수: 6

로마서, 난해한 교리서인가? 바울의 뜨거운 '영적 편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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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고린도의 폭풍이 지나간 뒤 찾아온 평온

많은 이들이 로마서를 어렵고 딱딱한 교리서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로마서의 집필 배경을 보면 이 편지는 매우 따뜻하고 활짝 열린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의 오랜 갈등이 해결된 직후, 마음과 영이 가장 충만한 상태에서 로마의 성도들을 향해 펜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논문이 아니라, 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동료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1. 수신자 확인: 유대인적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로마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수신자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특히 유대교적 전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내가 내 골육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원할 정도로(롬 9:3)" 깊은 동포애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이 편지의 맥락이 유대인 성도들의 고민(율법과 은혜의 관계)에 닿아 있음을 이해할 때, 로마서의 문법은 비로소 풀리기 시작합니다.

2. 구약의 완성으로 읽는 로마서

로마서는 구약과 단절된 신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이사야와 엘리야를 끊임없이 소환합니다.

엘리야의 낙심: 바울은 엘리야의 시대를 언급하며, 하나님이 남겨두신 '남은 자'의 사상을 강조합니다.

이사야의 예언: 구약의 예언자들이 바라보았던 메시아의 통치가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증명합니다. 즉, 로마서는 구약이라는 뿌리에서 피어난 복음이라는 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기독교 역사의 오해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로마서 11장과 12장의 맥락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롬 11:25)"이라는 말씀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때로 유대인을 배제하는 논리로 오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본의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있습니다. 유대인의 완악함조차 이방인을 구원하는 통로로 쓰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며, 결코 유대인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역설합니다. 이것을 '대체 신학'이 아닌 '회복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로마서는 더 이상 난해한 암호가 아닙니다.

결론: 로마서는 영의 눈으로 읽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하며 신학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내립니다. 고린도에서의 아픔을 딛고 영과 마음이 활짝 열린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그분의 신실하신 계획 속에 우리 모두를 품고 계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로마서를 읽어 내려간다면, 우리는 바울이 느꼈던 그 뜨거운 영적 감동을 오늘날 뉴욕의 한복판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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