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를 읽고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그리스와 오른쪽 터키가 마주보고 있다. 그리스 본토에는 고린도교회가 있었고 지금의 터키, 당시 아시아에는 에베소교회가 있었다. 에게해는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섬들을 갖고 있다. 이 섬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문명을 갖고 있어 대표적인 에게문명을 낳기도 했다.

사도바울이 편지를 보냈던 에베소교회는 고린도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에베소교회 사역 중에 고린도교회와의 갈등 문제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했던 기록이 고린도전서와 후서에 잘 기록돼 있다.

사도바울의 핵심 선교전략은 ‘도시선교’였다. 에베소는 당시 아시아의 중심 도시로서 지금의 뉴욕처럼 번성한 도시였다. 고린도 지역 또한 해안지역에 접해 무역이 활성화된 도시였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다.

당시 에베소는 다산을 상징하는 아데미 신상을 숭배하고 이를통해 돈을 버는 사업가들도 있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두란노서원에서 3년 가까이 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을 설파했다. 그리고 자신의 혼을 쏟아부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 편지의 내용은 ‘에베소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써 나갔다. 바울은 교회는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몸으로 정의한다. 이것을 남편과 아내, 주인과 종의 관계로 확장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나타나는 신비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 교회는 하나님이 온 우주에 드러내고자 하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편으로 소개된다. 그 직분을 감당하는 이들이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와 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자와 교사 들이다. 목자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목사’라는 직책으로 살짝 바뀌어 성경에 기록되고 있다. 물론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는 ESV(English Standard Version)에서는 목사가 아닌 ‘목자’로 기록하고 있다.

성경원문에 충실하다면 모든 성경의 목사는 ‘목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다만 교회 조직상 목사(Pastor)라는 호칭은 자유롭게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바울이 교회를 언급함에 있어 주목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당시 로마제국을 향한 바울의 입장이다.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바울은 그리스도 복음을 위해 다메섹의 회심사건 이후 일생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고린도교회 갈등이 해결된 이후에는 영안이 활짝 열려 로마서를 통해 로마제국의 수도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에베소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방법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붙어 있음으로 그것을 보고 로마제국이 변화되기를 기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회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권세자들이나 당국자들을 포함한 하늘의 악한 영적인 세력과의 싸움임을 강조한다.

이제 간단하게나마 교회와 선교에 대한 점을 요약해 보자.

바울의 관심은 교회인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의 관심은 도시였고 로마제국이었다. 고린도와 에베소가 그 대표적인 지역이었고 당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로마제국도 주요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스라엘을 역사 가운데 들어 사용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 한반도를 들어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게 하는데 사용하실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방향은 온세계와 열방을 향해 나아가야 될 것이지만 특별히 전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뉴욕과 워싱턴’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고린도와 에베소 사이의 섬들이 다양한 가치관을 통해 한 문명을 이루었으나 그것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 문명은 쇠락하듯이 뉴욕과 워싱턴을 포함한 도시들도 자본주의의 유익함을 구가하고 있으나 그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스스로 쇠락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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